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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김정환 〈흐르는 반영反映〉 : 스테인리스 미러, 알루미늄 프레임, 모터, 깊이 지각 카메라
붉은 공간에 들어서자 눈이 적응하기도 전에 벽면 전체를 따라 길게 늘어선 20개의 움직이는 수직 거울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나란히 놓인 거울들이 서로 다른 위상차를 가지고 뒤틀리는 운동은 반사되는 상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왜곡하며 맥동
pulse을 생성한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불연속적인 시간 지연이 끊임없이 중첩되어 단 한 순간도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되지 않는다. 꽤나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거울들의 각 모터에서 발생하는 낮은 웅웅거림은 휘어지는 거울 표면의 운동과 함께 공간 전체에 일정한 음압을 형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행하게 마주보는 거울들이 만들어내는 연속된 공간은 현실의 규칙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레드룸
Red Room1)의 내부처럼 지각된다. 스테인리스 미러의 위와 아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꼬이는 시퀀스에서는 갈라진 거울 커튼이 이쪽과 저쪽 사이를 가르는 경계면의 틈으로 작동한다. 관람자는 자신의 형상을 인지하지만 세로로 분절된 단위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밀려나는 반사 이미지는 이세계와 현실 사이를 가르는 파동 속에서 분쇄된다. 시퀀스가 ‘Movement IV: Resonant Selves’에 도달하면 모든 거울이 일제히 흔들리며 음률을 형성하고, 진동은 공간 전체에 거대한 리듬을 부여한다.
이곳에서는 형태보다 흐름이 먼저 지각되고, 정지된 이미지보다 변위의 리듬이 전면에 떠오르며, 단일한 시점보다 흔들리는 시간의 얇은 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작품은 하나의 구조물로 놓여 있지만 마주보는 거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변조되는 시간과 공간의 반복되는 배열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있다.
Installation view, 2025. © dada_xiv
Q. 여러 작업에서 회전 운동이나 꼬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동작들의 이유는?
A. 핵심은 회전 운동에 의한 위상의 차이다.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 설치했던 〈시간의 정원〉(2022)에서는 다이크로익 필름이 뒤틀리며 시간의 흐름을 묘사했다. 그간 여러 작업에서 시도해온 ‘비틀림’에 대한 실험은 모두 진폭과 위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정보는 결국 위상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이면은 조화와 반복의 근본 원리, 중첩과 같은 구조가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이 뒤틀리거나 단일한 순간이 여러 층위로 겹쳐 보이기도 한다. 회전 운동은 위상의 차이에서 오는 감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다.
Q. 거울 전체가 진동하는 시퀀스에서는 진동이 음률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시퀀스를 설계한 배경은?
A. 모터들의 진동수를 조절하여 음률을 이루도록 설계했다. 나는 감정적 서사 대신 움직임 자체를 본질로 삼는 구조에 오래 관심을 두어 왔다.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이 개입하지 않는 정상
steady 상태에서 오히려 미세한 고조와 동요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으며,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어떤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온전히 나아가거나 존재하기 위해서 일정한 비례나 평균율, 화성적 상태에 도달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에서는 회전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특정한 평균율, 즉 ‘생동’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비율을 포착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다. 무엇이 흐름을 유지시키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지, 조화의 비율과 위상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생명 현상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러한 기제들을 더 잘 살펴보고자 한다.
거울의 뒤틀림과 진동이 만들어내는 반사와 왜곡, 상의 분절은 단순한 인터랙션이나 착시 효과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가 겨냥하는 것은 반사된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형상을 가능하게 하는 리듬의 기반, 즉 회전과 진동이 만들어내는 위상 구조이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거울들의 표면은 조율된 파동의 장을 이루며, 각 거울이 서로 다른 위상을 취해 뒤틀리면서 시간과 공간이 국소적으로 변형되는 감각이 발생한다. 거울의 회전은 임의의 뒤틀림이 아니라 여러 위상들이 정밀하게 맞물리며 형성되는 패턴이다. 이러한 위상들의 중첩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정상 상태
steady state에 해당하는 조화를 이루며, 작품은 이러한 조화가 유지되는 조건과 그러한 과정에서의 변주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는 평균율적 사고와 닮아 있다. 평균율이 옥타브를 균질하게 분할하여 고유한 조화를 형성하듯이, 거울들의 반복 운동 역시 우연에 기댄 진동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패턴 위에서 정상 상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작품에서는 깊이 센서가 관람자를 감지하면 시스템 전체가 거울의 반사 경로를 잠시 공간 어딘가의 한 점, 관람자의 위치에 집중시켰다가 곧 다시 고유의 리듬으로 복귀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거울의 뒤틀림 간격과 회전 주기, 더해지는 진동수는 작가가 알고리즘을 통해 부여한 특정한 단위들이다.
다만 현실 세계는 정상 상태의 흐름보다 불균등성, 동요, 과잉, 결함이 더 빈번하게 등장한다. 동시에 모든 불균형은 조율된 정현파들의 합으로 기술될 수 있다.
2) 이러한 조합들 가운데 자연의 ‘생동’에 대한 기여도가 더 큰 특정 비례나 진동수가 작가가 탐지하려는 ‘감각의 기준 단위’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의 존재는 정상 상태가 아닌, 외부에서 가해지는 끊임없는 변형과 침투와의 교환 과정 속에서 유지되므로, 정상 상태는 많은 경우 지속 가능한 상태라기보다는 국소적 안정점
local stable point일 때가 많다. 그러한 안정은 항상성을 보장하지 못하며 부분적이고 한시적인 조율에 그친다. 따라서 특정한 기준 단위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세계가 지닌 비대칭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축소하거나 오해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작품의 시스템은 일정한 조율의 긴장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다. 작품에서 뒤틀림을 제어하는 알고리즘이 관리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공진 진동수의 축적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회전력이 특정 시점에 과도하게 밀집되어 전체 시스템이 균형을 잃을 위험이다. 제어 알고리즘은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면밀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여기서 형성되는 안정성은 복잡한 계에서 저절로 수렴되는 정상 상태라기보다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변형과 침투에 대항하여 지속적인 조정을 통해 유지되는 균형에 가깝다. 관객이 마주하는 웅장한 울림과 흐름은 이러한 균형 위에서 성립하고 있으며, 조율되는 리듬과 조율 불가능한 리듬이 이미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Installation detail, 2025. © dada_xiv
Sketch for Proposal, 2025. © Kim Jeong Hwan
인터뷰와 글: dada_xiv (2025년 12월)
문화역서울284
Unfold X 2025 《Let Things Go-관계들의 관계》
참여 작가: oat, 김정환, Nora O’ Murchú, Noémi Büchi, Dries DEPOORTER, 룹앤테일, Meuko! Meuko! & NONEYE, Bassam Issa AL-SABAH, SIDE CORE, 소보람, 송예환, 송호준, Skawennati, 신교명, Anouk KRUITHOF, 양민하, Oblik Soundwork(Chaklam NG), 우주+림희영(유병준), 윤연준 & 고휘, 이정우, 조영각, 최민규, QIU Yu, Cod.Act, Portrait XO, 한윤정, 황인규
2025.12.09 - 12.21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 주최/주관: 서울문화재단